2020년 매듭짓기 #04: 4는 가위의 모양
2020. 12. 6. 13:52느슨한글
사월에는 머리를 잘랐다. 마지막으로 단발 머리를 했던 때가 언제더라. 14년도였나.. 가물가물하다. 나에게 단발도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웬만하면 긴 머리를 고수한다. 단발 머리를 하면 너무 어려 보이거나, 어려보이지 않으려고 펌을 넣으면 또 오히려 너무 늙어 보이기 때문이다. 키도 작은 데다가 밍숭맹숭한 얼굴이라 만만해보이기 딱 좋은 외모 조건을 갖고 있는 나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발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은 숏컷을 하고 싶었다. 별안간, 정말 별안간 나 숏컷도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한번쯤은 바싹하게 짧은 머리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하지만 나는 극도의 돌다리충이기 때문에 화끈하게 숏컷으로 잘라버릴 용기따위 없었고, 단발 머리에서부터 차근차근 잘라내보자!라는 게 당시의 계획이었다.
줄줄 기른 머리를 하나로 묶고 미용실에 갔다. 나름대로 찾아본 단발 사진을 한번 쭉 보여주고, 이렇게 잘라주세요 했다. 원장님은 말수가 적은 분이셨다. 긴 머리를 왜 갑자기 자르냐느니, 남자친구와 헤어졌냐느니 그런 귀찮은 질문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어디 가서 '머리 엄청 길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 일이 손꼽히던 나였다. 그만큼 꽤 길었던 머리카락을 귀 밑까지 잘라버리고 나니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내 머리 상태는 쇄골까지 내려오는 중단발이다. 그렇다.. 나는 결국 숏컷에 도전하지 못했다. 단발 머리를 하고나서 역시나 '중학생 같다'는 평이 쇄도했고, 고데기만 살짝 하면 되었던 긴 생머리와 극한의 편리함을 자랑하던 히피펌을 경험한 뒤의 나에게 단발머리는 너무나 관리하기가 힘든 머리였던 것이다.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해도 엄청나게 지저분해져서 큰맘먹고 볼륨매직까지 했으나, 그저 나의 3시간과 10만원을 기부한 꼴이 되어버려 분노했다. 머리를 묶지 못하는 것이 생각보다 불편하기도 했다. 단발이 이 정도인데 숏컷은...!
아마 살아가면서 또 단발을, 또는 숏컷을 시도할 때가 올 것이다. 사실 머리를 기르자고 마음먹은 지금도 중단발의 거지같은 꼴을 보면서 종종 다시 단발로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님을 상기하며 참고 또 참는다. 언제쯤 단발과 숏컷이 쿨하게 어울리는 성인 여성이 될 수 있을까? 그 때를 기다린다...
기념으로 남긴 나의 포니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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