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취향

녕녕이 2020. 9. 8. 23:56

느슨한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취향을 알게 됐다.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도, 부모님은 항상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셨다.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식사시간을 보낼 기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였고, 함께 외식할 기회는 더 더 적었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시간은 아직도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외식은 나와 동생의 졸업식에선 돈까스나 중국집, 이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맥도날드, 주말에는 한정식이나 갈비 등으로 메뉴가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물론 10~20년 전에는 지금처럼 메뉴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내 또래들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아무튼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엄마가 외식할 때 그런 곳들만 데려갔으니까… 엄마는 그런 고리타분한(?) 음식, 어른들이 좋아하는 정석적인 음식을 좋아한다는 선입견’을 가져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이다.





엄마는 한식보다 양식을 더 좋아한다. 아주 느끼한 까르보나라나, 빵을 크림소스에 찍어 먹을 수 있는 빠네도 좋아한다. 엄마의 취향을 제대로 알기 전까진 엄마가 양식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인턴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하고 처음 맞은 엄마의 생신날, 가족들을 이끌고 고급 양식 레스토랑에 갔다. 천천히 비싼 음식을 즐기며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며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비싼 분위기 값을 지불하고 레스토랑에 머무른 시간은 겨우 30분. 엄마랑 절대 분위기 좋은 양식 레스토랑은 오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때의 기억으로 ‘엄마는 양식을 싫어한다.’라고 머릿속에 콕 박혀버렸다. 솔직히 그 레스토랑은 맛이 없긴 했다.


그로부터 한참 후 엄마가 오래 해오던 일을 쉬게 되었고, 공백기 동안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조리학원을 다니셨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양식 과정 실기연습을 한다고 토마토 스튜를 만들고 있었다. 양식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양식 요리를 하냐고 놀렸다. 그러자 엄마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크림 파스타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엄마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다니! 돈을 벌게 되면, 엄마의 취향을 제대로 알아봐야지!라는 목표가 생겼다.





엄마는 스타벅스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좋아한다. 처음 먹고 엄청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얼마나 놀랐으면 조리학원 종강파티 때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3개나 사갔다! 모든 학원생들이 다 극찬을 했다고 한다. 엄마가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사오라고 할 때마다 칼로리를 말해준다. 구백팔십…사



엄마의 취향을 알게 되면서 신기하고 놀랐던 점이 있는데, 엄마는 꽤 트렌디한 인스타그래머의 입맛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샐러드와 파니니 같은 브런치류를 좋아해서 브런치카페에 데려가면 절대 실패할 일이 없다. 마마스에서 먹었던 감자스프와 파니니, 리코타치즈 샐러드의 조합을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가끔 내가 데려간 음식점이 불만족스러울 땐 마마스 얘길 꺼낸다. 또 트렌드새터답게 요즘 트렌드인 그릭요거트에 꽂혀있다. 



무화과를 좋아하는 엄마는 요즘 자몽에 꽂혀있어서, 내일 자몽 한 박스를 사야 한다. 루비자몽으로. 치킨은 60계치킨이고, 엄마와 치킨을 먹을 때 뿌링클은 절대 못 시키지만 골드킹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60계치킨 고추치킨이 우리 엄마의 최고 애정이다.



엄마와 나는 둘 다 빵순이인데, 엄마가 좋아할 만한 빵고르기쯤은 식은 죽 먹기다. 엄마는 크림치즈가 들어간 빵이나 슈크림과 과일이 조합된 빵을 좋아하고, 나는 단팥빵, 깜빠뉴, 치아바타 같은 심심한 빵이나 초코류를 좋아한다. 엄마와 나의 빵취향은 정 반대지만 나는 빵을 살 때 내 취향의 빵만 잔뜩 사 온다. 왜냐하면 내 돈이니깐! 빵 취향은 포기못해! 엄마도 빵만큼은 내 취향에 맞춰 사 온다.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끔 엄마께 드릴 음식을 사서 포장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친구들은 내가 엄마덕후인줄 알더라고. 사실 엄마덕후는 아니고 집에서는 굉장히 무뚝뚝한 K장녀란다. 이건 나의 또 다른 취미야.

엄마의 취향을 알아가는 건 너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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