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그 뒤

미피_ 2020. 8. 27. 22:49

느슨한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한다. 마스크 없는 일상이 어땠는지 희미하다. 가끔 길에서 혼자 걷고 있으면 한쪽 마스크를 벗어서 반대쪽 귀에 걸치고만 있는다. 하아. 이렇게 공기가 상쾌했나 싶다. 저 멀리서 사람이 오는 게 보인다. 나와 마주칠 즈음에 다시 마스크를 쓴다. 언제 다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으려나 싶다.

 

 

인스타에서 수영 컨텐츠를 그리는 작가를 팔로우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수영장을 오랫동안 못 다니고 있어 수영장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나 운동을 하지 못 해 허리가 다시 아프다는 이야기가 피드를 채운다. 구독하고 있는 수영 유투버들은 물속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물속에서 나는 소리들을 그대로 녹음해 올려준다. 실제로 할 수 있었던 수영은 이제 가상의 운동이 되어간다. 요즘은 수영을 소리로 체험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제일 불편한 건 수영장에 못 간다는 점이다. 4월쯤인가 체육시설들이 운영 중단을 권고받으면서 수영을 못 가게 되었다. 그때 코로나가 내 일상을 무너뜨렸다. 나에게 수영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코스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운동을 가지 못하니 퇴근 후 집, 퇴근 후 집, 퇴근 후 집 일상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약속도 없고, 카페도 못 가고, 밖에 다니기도 눈치가 보였다. 집에 갇혀있자니 갑갑했지만 변화된 일상에 나름 또 적응 중이었다. 운동을 쉰 지 일주일째부터는 하던 운동을 못해 온몸이 쑤시고 뻐근했다. 잠깐 코로나가 잠잠했던 중간에 수영장을 다닐 수 있었다. 그땐 코로나가 금방 없어진 것 같았다. 이주일쯤 되었나, 갑자기 하루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다시 수영장에 가지 못하고 있다. 수영장에 못 갔다, 갔다, 다시 못 가게 되니 이제는 영영 수영을 하지 못하게 되는 일상을 상상해보곤 한다. 백신이 나오려면 1~2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동안은 헬스에 가면 꼼짝없이 마스크를 껴야만 하고, 조금이라도 확진자가 늘어나면 수영장에 못 가게 되는걸까.

 

 

어떤 회사들은 재택근무를 한다. 처음엔 새로 생긴 후기가 SNS에 떠들썩했다. 침대에서 방으로 출근 10초 컷 등의 유머가 공감받을 수 있었다. 누구는 재택근무로 바뀐 일상을 기고했다. 온 가족이 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함께 아침을 먹고 각자 방으로 출근하는 일상 후기를 내놓았다. 잠깐 동안은 재택 하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서 편해졌다고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은 재택은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어떤 친구들과 낮에 카톡을 하면 누워있는 사진을 인증했다. 코로나 시대에도 출근을 해야만 하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었다.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게 되었다. 최초로 개학하지 못하고 수업을 시작하는 학년이 생겼다. 선생님들은 온라인 강의로 수업을 하는 걸 배워나갔다. 어른들은 무너진 아이들의 일상을 보며 학교가 사회화를 배우는 곳이라며 그 소중함을 외쳤다.

 

방역문제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니 여행은 꿈도 못 꾼다. 해외로 쉽게 못 가니 국내 여행객이 늘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무렵에 타이밍 좋게 목포, 영월 여행을 다녀왔다. 일상에서 쉽게 돌아다니지 못하고 국내 여행도 조심스러워 작년에 다녀온 보라카이 해변이 자꾸만 떠오른다. 코로나 이전에는 해외여행이 자유라고 생각된 적이 없었다.

 

 

정기적으로 만나던 생토마토 모임도 계속 미뤄지고 예정되어있던 약속도 취소된다. 결혼식, 종교, 단체 집회를 자제하거나 최소화하도록 권고받는다. 친구를 만나는 일상이 사라졌다. 결혼도 미룬다. 예배도 온라인으로 바꾼다. 권리 주장을 위한 집회도 중지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일단은 자유를 보류한 걸까.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잠시 과감한 통제를 하는 걸로 봐야 할까.

 

 

며칠 전 파리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와 카톡을 했다. 친구는 한국과는 반대의 유럽의 코로나 정서를 말해주었다. 웬만큼 괜찮은 면역력을 갖고 있으면 며칠 죽도록 아프고 낫는다고 했다. 이젠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다닌다고 했다. 헬스장에 운동하러 가면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이 걸리면 어떡해? 나이 많은 사람은 죽을 확률이 높은데?라고 물으면 장난 섞인 대답만 해주었다. 그 친구도 왜 사람들이 방역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만 대답했다. 유행에 금방 불타오를 수 있는 한국인들의 단합력 때문일까. 서양인들은 마스크를 쓰는 게 그렇게까지 불쾌한 걸까. 한국과 다른 정서를 가진 유럽 사람들은 코로나를 어떻게 그런 식으로 겪어낼 수 있는지 의문점만 커졌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도대체 무엇이 전 세계인의 일상을 이토록 통째로 변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코로나는 전쟁이다. 지구의 땅에서 인간과 바이러스가 벌이는 대규모 전쟁. 이번 전쟁은 그 어느 때의 전쟁보다 평화로워 보인다. 눈앞에서 시체가 보이거나, 적군을 피해 피난해야 하거나, 약탈과 침략의 과정은 없다. 대신 지구에서 횡포를 일삼았던 인간을 상대로 자연이 전쟁을 걸어왔다. 지난 수년 동안 점점 큰 규모의 전염병이 생기고 있었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 따위의 질병. 모두 동물에서부터 온 바이러스라고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육식에 대한 주의를 주는 것일까. 코로나는 사람의 일상을 멈추게 했다. 환경문제를 염려해보도록 일깨워 주었다. 24시간 돌리던 공장을 멈추게 했다. 변화된 환경에 사람들은 또 적응을 해 나간다. 손을 더 자주 씻거나, 마스크를 쓰고 나가거나, 재택근무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이런 바이러스에도 인간이 적응해버리면 그다음에 우리는 어떤 최악에 적응을 해야만 할까. 사스, 메르스, 코로나 그다음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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