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찾아나서는 무의미한 여정

김니타 2020. 8. 24. 23:24

느슨한글



요즘은 그냥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너무 심심해서 책을 읽기도 한다. 예전에는 책을 읽어내기 위해서 시간을 냈는데 요즘에는 심심해서 책을 찾는다. 

읽는다는 건 나에게 꽤 어려운 일이다. 어렸을 때 독서량이 적어서 그런가? 요즘은 그래도 좀 나아졌다. 고등학생 때는 읽어내는 걸 거의 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아마 그건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였겠지. 국어 영역을 풀어내는 게 나에게는 매우 버거웠다. 그 기나긴 지문들을 받으면 눈 앞이 아득해졌다.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이 마흔다섯 문제를 또 풀어내야 한다니. 숨이 막혀왔다. 그때 나는 내가 타고나기를 읽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건강해지면서 난독 비슷한 그 증상도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잘 읽어내지는 못한다. 철학과는 읽을 텍스트가 많은데 읽는 속도가 느려서 꽤 고생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금세 읽어내는 양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얼마 전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책을 읽을 때 한 번에 완벽하게 읽어내려 하지 말라고 했다. 그건 책에 대해 건방진 태도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이해를 못해도 그냥 계속 읽어나가라고. 아니 무슨 소리야, 그게?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계속 읽어? 더불어 책을 읽을 때 너무 무거운 마음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독서법과 같은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던 적이 없는데, 요즘 그 이야기를 다시 곱씹게 된다. 항상 책을 읽는 것 자체를 즐긴다기보다는 그 책에서 얻게되는 것을 즐겼는데, 이제는 읽는다는 행위 자체도 즐기고 싶다. 시간을 보내기에 무언가를 읽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에 집중하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에게 도래할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지 시간을 흐르는 것 자체가 버거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나는 때로 나에게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느낀다. 이미 많은 날들을 살아온 것 같고, 인생에 재미라는 건 그다지 없고, 지겨운지 한참 되었는데도 아직 20대 중반이라는 게 버겁다. 나는 시간이 흐르는 것 자체가 버거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보내는 게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살아내야하는지 가늠하다보면 국어 지문을 마주했을 때처럼 아득해진다.

자가격리를 할 때 힘들었던 건 그 방 안에 갇혀 아무런 공간적 변화는 이루지 못하고 시간적 변화만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만끽하게 되면 내 존재에 대해 더 의식하게 된다. 내 존재를 의식한다는 건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그냥. 그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는데.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는데 살아있다는 생각만 계속해서 드는 상태라고 하면 될 것 같다. 그 괴리에서 오는 느낌은 꽤나 고통스럽다. 중학생 때부터 해온 실존적인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정녕 살아있는가, 이 세계는 존재하는가와 같은 것들에 대해 여태 아무런 대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 질문들에 온종일 매달리던 때도 있었지만, 답 없이 그 질문만 계속하게 되는 상황에 지쳤고 그래서 그저 묻어두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 질문들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 질문들은 해답을 찾지 못한채로 여전히 내 마음안에 남아있고 나를 괴롭힌다.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할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일에 몰두하느라 잊기도 하지만, 이렇게 내가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는 걸 의식할 때면 그 질문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는 살아있는가? 나는 왜 사는가?

아마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이유는 우연때문일 것이다. 별 이유 없이. 나의 생물학적 부모가 어쩌다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는데 그게 나였을 뿐이다. 나는 왜 사는가? 태어났기 때문에. 이 역시 별 다른 이유 없이. 김대식의 책에서 인간은 존재의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했나, 좋다고 했나. 아무튼 그런 뉘앙스로 이야기한 걸 본 적이 있다. 망치는 망치로 기능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살면서 망치뿐이 될 수 없지만, 인간은 존재의 이유가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인상깊기는 했지만 감명깊지는 않았다. 뇌로는 그렇구나, 인간은 그래서 무한한 존재고 나는 그래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그래서 나는. 나는 그래서 이유를 가진 삶보다 더 멋진 삶을 살아낼 수 있는거라고, 이유가 없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일이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그다지 와닿지가 않는다. 난 어쩌면 이 세상에 이유따위는 없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와닿지 않는다는 건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은걸까. 나는 의미 없는 세상 속에서 계속해서 의미를 찾아나서는 무의미한 여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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