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에 비싼 것 올리기

누아nua 2020. 7. 28. 23:58

느슨한글

 

기분 좋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옛날 일기라도 재탕하려고 보니 내가 썼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낯선 문장들인데 또 내가 썼을 법한 이야기들이고. 그래서인지 재미와는 멀어져 있는 글투성이다. 지금의 나를 믿을 수 없어서 과거의 나에게 기대했다니... 너무 의미 없는 일이다. 차라리 미래의 나에게 기대해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진짜 어쩐담. 하고 싶은 얘기가 하나도 없다. 이렇게까지 할 말이 없다니 말 많은 나에게는 너무 드문 일이며 정말이지 글 쓰는 모임은 스불재가 아니었을까... 내 발등 찍기 그런 것 말이다. 그래도 과거의 글을 많이 구경했는데 언젠가 이곳에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 나의 취미 중 하나는 네일아트다. 취미라고 부를 수 있기까지 얼마 정도를 썼나 돌이켰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서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손톱에 뭔가를 칠하거나 올리는 걸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손에 대해 좋은 기억들이 많기도 하다. '손' 하면 손을 잡는다거나, 온갖 간지러운 것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내 손을 예뻐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손은 다른 이들이 쉽게 어여삐 여겨주는 곳 중의 하나였다. 손에 대해서 떠오르는 장면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외숙모가 손을 매만지며 인형 손 같다고 했던 것. 외숙모가 그런 말을 하며 친척들이랑 같이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부끄러우면서도 칭찬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또 대학 시절 동아리 선배들이랑 같이 술을 마시러 갔던 맥주창고에서 손을 만져졌던 기억. 옆에 앉아있던 언니가 우연히 나랑 손이 맞닿고는 손이 너무 부드럽다며, 만져봐도 되냐고 해서 같이 술 마시던 모든 사람이 나에게 허락을 구하고 손을 만져봤다. 너무 웃기고, 민망스럽고, 내 손이 부드럽긴 한가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예전과 같은 예쁜 손이나 부드러운 손은 남아있지 않지만, 다르게 예뻐해 주고 있다. 손톱에 뭔가를 많이 올리면서.

막 스무 살이 됐을 때는 쿠폰 사이트에서 사서 저렴한 가격에 네일을 받으러 다녔던 것 같다. 쿠폰을 이용하느라 다녔던 네일숍도 여러 군데였다. 아무래도 금전적인 부담이 있어서 꾸준히 다니지는 못했고 가끔 기분전환을 하는 용도로 생각했다. 학교 정문 앞 건너편 미용실에 있던 샵인샵을 공강 때 잠깐 짬을 내서 다녀온 적도 있다. 꽤나 열심히였다. 더 어릴 때는 매니큐어를 사다가 직접 칠했다. 아마 기억에 학교 다닐 때는 규정이 있어서 손톱에 뭘 칠하지는 못했던 것 같고, 주말이나 방학 때 조금씩 칠했는데, 큰외삼촌을 만나러 갈 때는 엄마가 혼난다며 다 지우라고 하고는 했다. 나중에 이 얘기를 큰외삼촌의 딸인 사촌 언니에게 했는데 언니가 엄마가 그냥 내 손톱 보기 싫어서 그렇게 말한 것 아니냐고, 언니는 그런 거로 혼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십 년도 더 지나든 배신감...

 

열심히 손톱을 칠한 탓인지 매니큐어를 꽤 잘 칠해서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나서서 친구들에게 칠해준 적도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매니큐어 중에서 고르거나, 친구가 직접 가져온 매니큐어를 들고 손에 힘 빼라고 말하고는 손가락 하나하나 공들여 칠했던 기억들. 다 바르고 손가락을 펴서 구경하는 친구들을 보는 게 그렇게 뿌듯했더랬다. 진짜 돈 내고 바른 것 같다고 칭찬을 해주면 더 칠해주고 싶고. 이제는... 그냥 내가 돈을 내고 바른다. 매니큐어를 잘 칠하는 건 은근히 성가신데, 그래서 새로운 샵에 가면 이제는 선생님의 실력을 대충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큐티클 라인을 잘 채우는지. 한 번에 바르는지, 아니면 꼬지로 라인을 정리하는지. 발린 매니큐어는 고른지. 마감이 잘 되었는지. 레이어링은 어떻게 하는지. 그런데 그건 내가 그만큼 돈을 많이 썼다는 뜻이기도 해서 조금 가슴이 아프다...

네일 아트야말로 정말 꾸밈 노동의 최고봉 아닐까? 이렇게 네일 아트는 내 오랜 취미 중 하나인데, 가끔은 화려한 손톱을 보여주는 게 신경 쓰일 때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할 친구들이 많이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별개로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는 네일 아트샵이 많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저렴한 가격에 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10년 전만 해도 젤 네일이 제거가 귀찮다고 일반 네일을 많이 하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그 귀찮음과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아니 이제 젤 네일이 기본 네일이 되었다. 제거의 불편함은 네일을 하려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젤 네일은 절대 싼 가격이 아니다. 요즘은 컬러만 바르는 게 아니라 뭐라도 올리기 때문에 정말 저렴하면 3만 원에서 5만 원 이상은 당연하다. 이렇게 큰 비용이 드는 꾸밈이 점점 일상적인 게 되어간다는 분위기가 가끔 이상하기도 하다. 물론 하는 사람은 하고, 안 하는 사람은 안 해서 이런 이야기도 사실은 의미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장과 네일 아트는 그래도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일 테니까.

내가 가장 최근에 한 네일은 사실... 제거 비용 포함 7만 5천 원이 들었다. 마음으로 정해놓았던 상한선을 그날따라 유독 힘들었다는 이유로 돌파하고 나니 이제 무서운 게 사라졌다. 네일에 8만 원도 쓸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거나 기분 전환을 하는 용도로 네일을 했던 게 분명한데. 이제는 매일매일 나를 기분전환 시켜주지 않으면 업무를 할 수가 없다.라고 핑계를 대본다. 네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돈을 엄청나게 아낄 테지만, 지금 가장 몰입해있는 게 네일이다 보니 돈을 쓰는데 아주 관대해진다. 젤 네일을 하니까 오히려 손톱이 두꺼워져서 얇을 때보다 편하다든지 등으로 돈을 쓴 것에 대한 합리화도 하고 싶지만 사실 무엇보다 그냥 내 기분이 좋았다. 내 기분은 몹시 어려워서 이렇게 돈으로라도 둥가 둥가 해줘야 한다.

 

예쁜 게 올라간 화려한 손톱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을 너무 좋아하기도 하지만 네일은 책을 읽을 때 진가를 발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엄지나 셋째 손가락에 올라간 파츠가 빛을 반사해 읽고 있는 책에 예쁜 빛무리를 남기는데, 책을 읽다가 그걸 황홀하게 바라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가끔은 손톱 때문에 햇빛 밑에서 책을 읽는 것을 기대하고는 한다. 결국 그냥 좋아해서 하는 것이다. 반짝이는 것이 나는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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