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2020. 7. 29. 22:47느슨한글
교대근무라는 이름의 재택근무를 한 지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전염병이 성황이어도 꿋꿋이 출근을 해야만 했던 나에게 드디어 재택, 재택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재택근무에 돌입한 친구들에게 집에서 일하는 거 너무 부럽다는 말을 일백 번은 한 것 같다. 그 때마다 그들은 재택 별로라는 배부른 소리를 해대곤 했는데, 나는 그런 말이 정말 단순 인사치레 또는 예의상 하는 말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불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나자신이 경험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역시 사람은 겪어보기 전엔 모른다.
재택 돌입 직후에는 좀 멀쩡했던가? 아니 나의 재택근무는 첫날부터 뭔가 이상했다. 처음부터 주말인 것처럼 늦잠자고 놀고 먹었다. 마치 일주일에 4~5일의 주말이 주어진 것처럼, 게으른 생활에 무섭게도 빠르게 돌입했다. 나는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고삐가 풀려버리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종종 놀란다. 내 몸은 갑자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라고 하는 건 못 들은 척하면서, 갑자기 게을러지라는 명령은 참 잘 듣는다. 마치 게으름에 대한 관성만 존재하고 부지런함에 대한 관성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출근하는 날은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집에서 일하는 날은 느지막이 일어나 행정실에서 훔쳐온 노트북으로 게임을 한다. 가끔 오는 네이트온 알림만 놓치지 않으며…
다른 조교와 번갈아가며 출근하다보니 격주로 월수금, 화목 출근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또 나의 바이오리듬을 망쳐놓는 주범(이자 핑계)이다. 다소 불규칙한 이 출근 루틴에 내 몸은 아직도 적응을 못 했다. 뭐, 매일 일찍 일어나면 해결되는 문제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사실은.. 사실은 요즘 이상하게 정신이 없다. 머릿속이 다양한 무언가로 꽉 들어차서 마구 움직여대는 느낌이다. 그래서 비겁하지만 자꾸 바뀌는 주변 환경을 탓하고 싶다. 코로나로 학사 업무는 완전히 개판이 되었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특수해서 일을 하나 처리하는 데에도 이곳 저곳의 자문이 필요하다(본부와 학과 중간에 끼여있는 행정실의 숙명이다). 교대로 근무를 하다보니 평소에 담당하지 않던 기자재, 장비, 대관 등의 내용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야심차게 신청해둔 각종 블로그 체험단에 방문해야 하고, 후기도 써야 하며 글토마토도 써야 한다(또 댓글도..). 생토마토 책도 읽고 내가 읽으려고 빌려둔 책도 읽고, 못 본지 오래된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혹여나 우리 고양이들 성질나지 않게 수시로 보살펴 줘야 한다. 그 와중에 또 시작해버린 게임은 이제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않으면 모종의 부채감까지 들곤 한다. 오늘같이 게임을 전혀 하지 않은 날에는 그 자체가 경손실(경험치 손실)로 느껴진다. 내가 해야하는 모든 일들이 숙제같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마저도.
이 정도면 병이다. 정상인이라면 무리없이 해내는 일이 너무 버겁게 느껴지니 말이다. 어서 뭔가를 해야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뒤돌아서면 뭘 하기로 했었는지 잊어버리는 지금의 나는 붕괴된 루틴 아래 짓눌려 있는 듯 하다. 사실 이쯤되면 교대근무의 문제가 아니라 혜르쯔 개인의 문제인 수준인데 그냥 좀 투정이 부리고 싶어서 글을 써본다. 오늘도 하루종일 노트북은 켜놓고 글 쓰는 것 외의 모든 것을 하며, 부담감 뿐인 무계획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또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자처하지 않은 유일한 것, 코로나를 탓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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