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미피_ 2020. 7. 30. 19:28

느슨한글

나는 큰 원룸에 산다. 아파트, 빌라, 주택에 살지 않는다. 큰 원룸은 직접 상가 건물 1층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처음 부동산 계약할 때 중개해주시는 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셨던 게 기억이 난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최대한 직접 했다. 페인트칠, 조명 달기, 가벽 설치 등등... 배관, 전선 작업을 처리해주시는 인테리어 집 사장님에게 최대한 조언을 구했다. 작업 기한을 넉넉하게 계산해서 계약하니 사장님이 사소한 DIY 인테리어 팁들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너무 감사해서 집 정리가 끝나고 떡을 만들어다 드렸다.


큰 원룸은 주방, 침실, 거실, 옷방이 벽으로 구분되어있지 않고 원룸처럼 되어있다. 얼마 전 나 혼자 산다를 보면서 봤던 헨리의 집.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이것저것 방을 꾸미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벽 없이 이어져 있는 집을 보면 이렇게 저렇게 바꿔볼 만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진다. 처음 상가건물에 살 때 냉난방이 걱정되어 사장님께 물어보았더니, 건물 자체가 신식이라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거주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문제가 조금 있었는데 건너서 알게 된 변호사님이 해결해 주셨다. 그때 인테리어 일로 한참 바빴는데, 마침 변호사님이 신경 쓰지 않게 잘 단속해주셔서 내용은 잘 모른다. 그저 변호사님께 사례비를 적당히 드렸다.


지금 사는 집은 도심에 가까이 있는데 주변이 한적한 분위기가 들어서 좋다. 아침 출근길에 전동 킥보드를 타고 가면 폐 속 끝까지 상쾌함이 가득 찬다. 회사는 매일매일 출근하고 있다. 사람에겐 적당한 사회활동도 필요하니까. 이직을 준비할 때 2가지 정도의 옵션을 고려했다. 자유로운 스타트업에서 일하거나, 업계의 유명한 회사에 다니면서 일을 배우는 것. 보안 문제가 얽혀있어서 회사를 밝히기는 어려운데 회사에 만족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에 종종 커피타임을 즐기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동료들이 있다. 월급은 용돈 정도로 생각하고 매달 모두 사용한다.


회사를 다닌 지 2년이 가까워지는데 회사의 단점이 보인다. 그래도 야근이 없고, 일적으로나 배울 사람들이 많아 아직 괜찮다. 언젠가는 퇴사를 할 예정이다. 사실 일 년여 전부터 작은 사업을 구상해 준비해왔다. 처음 사업을 생각할 땐 직종에 상관이 없다. 서비스를 구상해 창업하거나 하다 못해 개인 카페, 음식점 관심 가는 뭐든 좋다고 생각했다. 재미있으면 그만이었다. 내일이 설레고 기대되는 일 더 하고 싶은 일로 정하게 되었다.

사업 준비를 하는데도 늘 생각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다. 돈을 벌려고 사업하는게 아니니까. 스트레스받으면 이거 취미잖아 하고 나를 안정시킬 수 있다.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다. 즐겁고 일할 수 있다.


도시의 삶이 지쳐 갈 때쯤 도심과 가까운 3층 주택으로 옮기려고 봐 둔 집이 있다. 마당에는 푸른 잔디가 깔려있고 나무, 풀, 텃밭이 가꿔져 있다. 마당에 드리운 통창을 통해 거실에는 따뜻한 햇살이 내리쬔다. 거실에 들어서면 나무 냄새가 가득하다. 포근한 소파가 있고 골든 리트리버가 그 옆 카펫에 누워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뻥 뚫린 서재가 있다. 한쪽 벽면에는 책들을 가득히 꽂을 것이다. 가운데 있는 기다란 테이블에는 이것저것 하고 있는 취미활동들을 펼쳐놔야지. 읽다 만 책들, 독서모임 때 대접하고 남은 빵과 쿠키들. 원목 책상에는 지워지지 않은 유화 작업의 흔적들이 조금씩 묻어날 것 같다. 그리다 만 그림은 창가 반대쪽 피아노 옆에 있는 이젤에 쌓아져 있겠지.


지금 집에도 한쪽에 책들이 한참 쌓여 있다. 책을 사는 게 취미라 한 달에 몇십만 원어치 책을 쇼핑한다. 종이책의 느낌이 좋아서 책을 한두권 씩 모으기 시작했다. 교보문고에 놀러 가서 별다른 고민 없이 제목만 보고 책을 사기도 한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햇살 아래서 종이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좋은 문구나 구절이 있으면 연필로 밑줄을 슥슥 긋는다. 예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빌려다 읽어서 밑줄 치며 읽는 게 어려웠다. 책을 사더라도 소장할 가치가 없을 것 같으면 깨끗이 보고 알라딘에 중고책으로 팔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알라딘에서 밑줄 친 책도 중고책으로 팔 수 있어서 고민이 없다. 친구들이 가끔 집에 놀러오면 책을 한아름씩 빌려가는데 친구들이랑 같이 읽는 셈 치면 중고책으로 팔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읽으면서 표시했던 밑줄과 메모들이 있는데 그걸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테리어 정리가 마무리되었을 즈음부터 남자 친구와 친구들이 자주 집에 놀러 오기 시작했다. 금요일 밤에 모여서 주말 내내 집에서 자고가는 경우도 많아 주말에 혼자 지낸 기억이 많이 없다. 특히 최근엔 점점 자고가는 친구들이 늘었는데 잠자리가 좀 불편할 거 같아 신경 쓰인다. 침대를 하나 더 들여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 마침 좋은 침대를 퍼스널 쇼퍼분께서 몇 가지 골라 메일로 보내주셨다고 했다. 침대를 골라보려고 메일함에 들어갔는데 다른 설레는 메일을 발견했다. 다음 달 유럽여행 일정을 리마인드 해주는 알림이다.

다음 달에는 파리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간다. 대충 3개월 정도 있다 올 것 같다. 여행 계획을 세세하게 짜는 편이 아니라 돌아오는 날도 결정하지 못해서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도 아직 사지 못했다.


친구에게 미안해서 따로 에어비엔비를 잡겠다고 했는데 친구가 괜찮다고 했다. 어느 정도 방세를 내고 맛있는 것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파티에서 만난 교수분의 초청으로 현지 대학교를 방문해 파리에있는동안은 청강을 다니려고 한다. 해외에서 유학을 해보고 싶은데 좋은 체험기가 될 것 같다. 파티에서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연구하는 주제가 너무 흥미로워서 몇 시간을 얘기했다. 파티에서는 영어로 대화했지만 수업은 영어, 프랑스어가 섞여있다고 해서 걱정이 좀 된다. 그래도 청강이라서 큰 부담은 없겠지만. 교수님은 여성학, 비건, 동물보호, 환경, 철학, 기술, 디자인 문제를 아우르는 주제를 다루는데 처음 들어보는 학문 종류다. 요즘 새로 대두되는 주제인데 아직 연구된 논문이 별로 없어서 더 흥미가 간다. 내 사업과 접목시켜면 좋은 스타트 포인트가 될 것은 분명하다.




글쓴이 한마디

종종 했던 상상인데 마침 글감으로 추천해주어 술술 써내려가 보았습니다.

돈이 엄청 많아져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까?


'느슨한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인상(1)  (8) 2020.08.01
사촌동생  (10) 2020.07.31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7) 2020.07.29
손톱에 비싼 것 올리기  (6) 2020.07.28
여기는 저녁이고 그곳은 아침이고 나는  (7) 2020.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