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을 깔아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처럼
2020. 7. 14. 23:25느슨한글
글을 정기적으로 쓰는 모임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은 4주 전에 베어에 썼던 글의 첫 문장과 똑같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하고 싶다는 것에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바뀐 것이다. 사람들이 봐주었으면 하는 그럴듯한 글들을 열심히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어딘가에 올릴 생각을 하니 그 무엇도 완성되지 않은 글처럼 보인다. 오늘은 잠깐 짬을 내어 왜 내가 지금 이렇게 무기력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쓰다가 멈췄다. 내 기분과 에너지는 종종 호르몬 같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것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역시도 솔직하게 쓰고 있었지만. 나중에 후회라도 하게 될 글은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떤 글이 후회하지 않을 글이지? 그런 생각을 시작하니 어떤 글도 올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이야기는 친구와 한 대화가 들어있으니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그 애가 보면 나인지 알아챌 것이다. 이건 화난 상태로 쓴 거라 차분해진 지금 보니 너무 감정적이야. 다시 보니 이 글은 재미가 없다. 살릴 수 없는 글들을 뒤적이니 열한 시다. 아 이런 마감 없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이런 부담스러운 일을 누가 하자고 했지? 나다. 내가 이런 모임을 하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다면 오른손을 들어 뺨을 내려치자.
글쓰기 모임에서 글을 쓰기 싫다는 이야기로 두 문단을 채운다. 사실 모두 장황한 변명이다. 근래에 쓴 글이 나름의 기준으로 올리지 못하는 글이라면 올릴 수 있는 글은 쓸 때의 감정도 생각도 케케묵은 오래된 글뿐일 테다. 마침 그런 글이 있다. 나는 집에 들어가기 싫으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그날따라 하늘을 보면서 떠올린 생각들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에는 몇 안 되는 운동기구가 있는데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붕붕이라고 부르는 물건이었다. 발판을 딛고 올라서서 철봉을 잡고 발을 앞뒤로 붕붕 흔들었다. 철봉에 팔을 기대고 핸드폰을 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딘가로 떠나는 비행기가 보인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고개를 숙이는 것에 익숙했지 쳐드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분명 몇만 피트 위에는 있을,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보이는 저 비행기를 바라보면서 저걸 타고 떠날 수 있는 장소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마 아주 따듯한 곳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월에 들어서도 미친 듯이 추운 한국은, 이미 여름이 온 나라에 고작 육 일 머무른 나에게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곳이었다.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은 밤하늘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불 켜진 아파트 도시를 바라보며 설레어할까. 어딘가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내가 그렇듯 이 나라가 갑자기 낯설기라도 할까. 평생을 살아온 도시인데. 하늘을 계속 바라보는 건 질리지 않는다. 점점이 빛나던 비행기 불빛은 흐릿하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는 뜻이겠지. 들고 있던 목이 뻐근해진다. 고양이는 목 주변이 뭉쳐있는데 잘 안 쓰는 근육을 집사를 올려다보느라 많이 써서 그렇다고 했다. 언젠가 나와 눈높이가 다른 동물과 살게 되면 몸을 낮추어서 눈높이를 맞추고 싶다고 생각했다.
2019.4.16
일 년이 지나 본 글은 코로나 시대의 지금 너무 생경한 기분을 담고 있지만 언젠가 여행에 대한 글을 쓸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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