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에피소드 : 잊을 수 없는 카카오 바이크 체험기

미피_ 2020. 12. 23. 10:16

느슨한글

 

 

8월의 날씨는 참으로 변덕스러웠다. 나는 주말 오전에 필라테스에 갔다. 늑장부리지 않고 일어나 여유롭게 학원에 도착했다. 50분 동안 송글송글 땀맺히게 필라테스를 하고나니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충분히 상쾌한 주말을 시작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집에 어떻게 갈지 고민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 버스를 타기 싫은데... 약속에 가려면 11시에는 도착해야 하는데 걸어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완벽한 주말 아침을 위한 생각에 건물을 나설때까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카카오 바이크가 눈에 띄었다. 그래 이거다! 바이크를 타고 탄천 구경을 하며 집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늘엔 먹구름이 껴있었지만, 뭐 내가 집 가는 사이에 비가 오겠어?

 


나는 익숙하다는 듯이 카카오 바이크 앱을 켜서 자전거의 잠금을 해제했다.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준비는 충분했다.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몇 번이나 밟았으려나. 눈치도 없는 비는 후드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정도 쯤이야 맞고 갈 수 있지. 비맞는것도 로망이잖아. 괜찮아. 기분 좋게 생각했던것도 잠시, 8월의 비는 정열적이었다. 한 두 방울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을 적시더니 몇 분 사이에 우두두 소리를 내며 온 도로를 까맣게 물들였다. 조금더 일찍 정신을 차렸으면 괜찮았으나. 나는 간신히 비를 피할 수 있는 탄천 근처의 산책로를 찾았다. 하 어쩌지. 약속 늦겠네. 그나저나 이 비 그칠 수 있나?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가올 감정의 폭풍을 알지 못했다.

 


마음먹은 대로 집에 갈 수 없게 되자 슬슬 조급함과 짜증이 밀려왔다. 1분이 10분 같았고, 나는 자꾸만 핸드폰으로 시간만 확인했다. 하늘만 쳐다보며 어쩐지 어떻게 해야할 줄 몰랐다. 일이 어떻게 되려면 꼭 그렇더라고. 비가 멈출 기미가 없고 빗소리가 거세지고 나서야 나는 그 자리에 자전거를 세워두기로 마음먹었다. 바이크를 주차하기 위해 앱을 열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 손에 물이 젖어 핸드폰이 잘 눌러지지도 않아 짜증이 올라왔다.

 


엥? 이게 무슨말이지? 만 원의 벌금을 내야한다고? 마침 그곳은 정차 불가능 지역었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화면만 쳐다봤다. 거기에 그대로 바이크를 세워두면 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안내 문구를. 아니지. 정신차리자. 서비스 기획자로서 지금 상황을 잘 관찰해 두자. 어떻게든 집에 갈 수 있겠지. 희망과 짜증이 섞은채로 카카오 바이크 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불가능한 지역이면 어디에 세워둬야 하는 거지? 그런데 어디부터 가능한 지역이라고 보여주지 않는 거지? 카카오에서 만든 서비스가 이래도 되는 건가? 영문도 모르고 만원을 가져간다고? 정차 할 수 없다는 중요한 정보를 왜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은 거지? 내가 보지 못한 건가? 그리고 어디로 가야 정차할 수 있는지 왜 이렇게 찾기 힘들게 해놨지?! 정말 사용자경험 꽝이네! 내가 이런 일을 겪을 줄이야! 속으로 울분을 토하며 카카오 바이크를 만든 사람들을 향해 온갖 나쁜 말들을 생각했다. 

 


그사이 비는 점점 거세졌고, 8월의 비 아래에서는 나무 밑도 비를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쏟아지는 비를 쳐다보면서 만원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그 자리에 자전거를 정차했다. 문자가 날라왔다. 국민카드 카카오 바이크 10,000원 결제 완료. 긴 호흡을 내쉬며 이럴 때 필요한 찬스를 발동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버스 정류장에 가다가 다 젖을 것 같은데 탄천 근처로 차를 몰고 와주면 안 되냐고. 슬슬 약올라 있는 탓에 빨리 뛰고 있는 심장을 달래며. 눈치를 봐가며 무사히 전화를 끊었고, 나는 분노에 휩싸여 앱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로 이성의 끈을 붙잡고 이것저것 눌렀다. 모든 메뉴를 눌러본 뒤에야 탄천에 인접해있는 길가에는 자전거를 정차할 수 없게 해놓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길 건너편으로 건너가서 정차했다면 만 원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좀처럼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게 없어 당장 고객센터에 문의를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화를 간신히 진정시키면서 고객센터에 들어가 폭풍 타자로 상담사에게 울분에 넘친 실시간 채팅을 남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비가 내려서 자전거를 정차했는데, 어쩌고저쩌고, 비가 쏟아지는데 앱에서는 어디가 정차 가능 구역인지 알기가 힘들었다 어쩌고저쩌고 ... 상담사에게 한참을 감정을 쏟아냈다. 그리고 화를 내는 와중에 나는 조심스럽게 벌금을 돌려받을 수 없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상담사는 망설임 없이 상담사는 환불 처리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벌금 결제가 취소되었다. 갑자기 나는 어마어마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런 경우에 대응 매뉴얼이 있었던 건가?! 나는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있었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제야 상담사에게 감정을 숨기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고, 죄송하다며 사과의 메세지를 남기며 상담을 종료했다.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서 폭풍같았던 기분을 놀리기라도 하는듯 비는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다시는 카카오 바이크를 이용하지 말아야지. 처음부터 그렇게 만족하는 서비스는 아니었잖아?! 벌금을 돌려받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울분의 감정을 되새겼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생각했고, 그런데 아직도 화가 나고 있는 상황을 버텨야 했고, 상담사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할 걸 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카카오에서 만든 서비스가 이런 감정을 겪게 할 줄이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카카오톡에 들어가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며 내 마음을 위로했다. 그 이후로 길에서 카카오 바이크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이 기억에 얽힌 감정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아직도 카카오 바이크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