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매듭짓기 #07: 뒤늦은 템플스테이 이야기

hyertz 2020. 12. 8. 16:05

느슨한글


7월, 친구들과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남양주시 덕소읍에 위치한 묘적사라는 절이었다. 여유가 되면 바다가 보이는 절에 가고팠지만 교통편도 불편하고 시간도 오래걸리고, 무엇보다 귀찮으니 이번에는 그냥 근교로 다녀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열두시에 청량리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나랑 박나래가 지각을 하는 탓에 인천에서 오는 김다윤만이 제시간에 도착했다. 내가 일어난 시각 이미 집을 나섰던 그녀는 몹시 분노했다. 롯데리아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나오자 이번엔 김다윤이 우산을 두고 나와 부산을 떨었다. 박나래와 나는 쟤도 한건 했으니 밸런스 완벽하다며 안도했다. 시작부터 삐걱대는 것이 참 우리답다 싶었다.


덕소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러 갔다. 마침 3분 후 도착이라 타이밍 완벽하다고 기뻐했는데 노선도를 보니 방향이 반대였다. 급하게 길을 건너려는데 눈 앞에서 우리가 타야하는 버스가 지나갔다. 결국 택시를 탔는데 웬걸 처음에 타려던 버스 방향이 묘적사 방향이다. 그래도 택시가 더 빨리 도착할테니 자책하지 않았다. 주말이라 계곡에 놀러온 차가 많아서 길이 꽉 막혀있었는데 지름길을 통해 달리니 빨리 도착해서 만족스러웠다. 기사 아저씨가 좀 이상했던 것만 빼고. 목적지를 말하자 그는 별안간 왜이렇게 늦게 왔냐고(?) 혼을 냈다. 우리가 세시까지만 들어가면 되니 괜찮다고 하니 그럼 네시에 도착을 해야겠다며 되도않는 농담을 쳤다. 그러다 김다윤이 지난 주에 경주에서 첨성대를 보고 왔다고 하길래 수학여행 다녀왔네. 석굴암도 봤냐?” 물은 것이 화근이었다. 석굴암은 안 봤다고 하자마자 그는 경주에 가서 왜 석굴암을 안 보고 오느냐 약 5분간 역정을 냈다. 김다윤이 계속 다른 얘기를 꺼내려고 하는데도 그 큰 목소리로 석굴암 얘기만 앵무새처럼 질러대는 게 너무 황당하고 웃겨서 눈물이 났다. 그 뒤로 우리는 입을 닫았다.


택시에서 내려 묘적사까지 열심히 걸었다. 땡볕의 산을 마스크까지 끼고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더워 죽을 것 같아 중간에 카페라도 있으면 들어가자! 마음먹었다. 설마 산에 있다고 커피 한잔에 막 5천원 하는 건 아니겠지? 우스갯소리 삼아 했던 농담이 현실이 될 줄이야... 아이스아메리카노 5000원이라는 살인적인 물가에 경악하며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생명수를 사 마셨다.



도착 후에 짐을 풀자마자 샤워를 했다. 예약할 때 경치가 좋은 방을 달라고 간곡히 요청한 결과, 우리는 창 밖으로 계곡이 보이는 신관을 배정받았다. 창틀에 걸터 앉아 사진도 찍고 누워서 수다를 떨었다.



아직 저녁 시간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벌써 배가 고파 징징거리다가 시간 맞춰 무영루로 향했다. 그날 템플 스테이는 우리 포함 열 다섯 명이 참가했는데 조합이 꽤나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와 딸 둘, 그리고 손자 손녀로 구성된 가족 6명에 경찰관과 초등학생 부자, 그리고 누가봐도 커플같으나 친구라고 선 긋던 남녀 한 쌍. 독특한 조합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색한 분위기 속에 스님을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20분이 지났으나 스님은 오지 않았다. 이것이 느림의 미학인가? 참다 못한 아주머니께서 사무실에 가 말씀을 하셨고 그 뒤로도 5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스님은 등장하셨다 30분 지각한 스님의 첫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스님의 풍채가 전혀 없고 그냥 대머리의 중년 남성같다는 생각을 했다.(죄송합니다) 그리고 아주 목소리도 작아서 맨 뒤에 앉아있던 나는 도통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묘적사의 역사 또는 한국사 비슷한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스님은 자율 배식이지만 꼭 먹을 만큼만 가져온 뒤 추가로 배식해 오라며 신신당부 하셨다. 배고팠던 우리는 쏜살같이 달려나가 첫 번째로 밥을 받았고 스님이 말한대로 반찬을 아주 조금씩만 가져왔으나, 다시 반찬을 가지러 갔을 땐 이미 인기 메뉴가 모두 동난 뒤였다...


아쉬운 식사를 마치고 바깥에서 사진도 좀 찍어보고 뒹굴거리다가 저녁 예불을 드리고 차를 마셨다. 그리고 다같이 둘러 앉아 오늘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연꽃초 만들기를 했다. 완성작은 좀 허접했지만 촛불을 태우고 연못에 띄우니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예뻤다.



방에 돌아와 씻고 이불을 깔고 누웠다. 창 밖에서 들리는 계곡물 소리가 빗소리 같아 자꾸만 내다보았다. 김다윤은 너무 배가 고프다며 인스타그램 속 음식사진을 들여다보고는 우는 소리를 내다가 진짜로 눈물을 한 방울 흘렸고, 박나래도 잠이 안 온다고 뒤척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들 사이에 누워 누구보다 빠르게 잠 들었다. 다음 날 있을 아침 예불과 108배를 위해서..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자 마자 눈꼽만 대충 떼고 대웅전으로 향했다. 동이 덜 튼 새벽 산속에 울려퍼지는 목탁 소리가 기분 좋았다. 아침 예불을 드리러 가 자리를 잡는데 스님이 우리 셋을 뿔뿔이 떨어뜨려 놓으셨다. 박나래는 앞줄의 부자 옆으로 쫓겨났는데 예불 하면서 절 하지 않는 타이밍에 자꾸 절을 해대서 뒤에서 보는 나랑 김다윤은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아주 기대했던 108배는 기대한만큼 실망이 컸다. 스님이 무릎이 안 좋으셔서 절을 같이 하지 못 한건 아무렇지 않았으나, 유튜브 가이드를 들으며 절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확히 내가 집에서 틀어놓고 했던 그 영상을! 이럴 수는 없는 법이라고.. 현실을 부정하며 열심히도 절 했다.


아침예불을 마치고 잠깐 방에서 쉬다 아침을 먹으러 나오니(우리는 배가 고파서 10분이나 먼저 나왔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말은 즉슨 아침 폭포 명상이 취소될 확률이 수직 상승했다는 것... 슬프게도 폭우는 그칠 기미가 없었고, 나의 템플 스테이 기대종목 2위였던 아침 폭포 명상은 스님과의 차담으로 대체되었다. 스님은 어떤 나무토막 하나가 들어간 차를 우리에게 주시며 그것이 아주 비싼 차라고 강조하셨다.


얼렁뚱땅 차담까지 마치고 방을 치운 뒤 퇴소했다. 다행히 역까지 묘적사 차량으로 데려다주셔서 빗길에도 편안하게 이동했다. 아침도 양껏 먹지 못한 우리는 덕소역에 있는 어묵과 떡볶이를 미친듯이 흡입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꼭 체험형 말고 휴식형,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오겠노라 다짐하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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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