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에피소드 : orange를 찾아서
2020. 12. 11. 14:47느슨한글
열정이 비건으로 옮겨갔나. 두부 유부초밥 레시피를 다시 도전했고 다시 실패했다. 쉑쉑버거에서 머쉬룸버거를 먹고 그 이후로 쉑쉑에가면 시키는 고정메뉴가 되었다. 생일에는 별다른 게 있었나? 벚꽃을 보러 갔었다. 친구에게 다른 친구를 소개해 주어서 집에 놀러가 밤새도록 술을 마시게 되었다. 친구네 가서 청양마요네즈에 먹태를 찍어 먹고, 끝내주는 오뎅탕을 먹었고, 레몬 토닉워터를 섞은 소주를 마셨다. 어른 같은 재미가 생겼다. 술을 들이키고 나서 허공을 쳐다보았는데 이게 완연한 30대의 삶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매일 똑같은 데이트가 지루해져서 평소에 안 가던 곳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광주에 어떤 사람 많은 카페에 가보기도 했고. 인천에도 갔다. 수족관에서 팔뚝만한 잉어를 몇 마리나 키우던 곳에서 饺子를 먹었고, 차이나타운에서 제일 커 보이는 중국집에 가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유린기도 먹었다. 골목을 구경하다가 고양이가 있는 독립서점을 발견해 책 구경을 했고. 벚꽃이 예쁘게 핀 길에 사람이 없어 흔들의자 같은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길을 따라 걷다가 유명한 채식 식당을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다.
방안에서 식물을 많이 키웠었다. 알로, 이름 모를 둥글고 도톰한 잎을 가진 식물, 10년도 더 전에 키우려고 샀던 선인장, 로즈마리. 물만 주었는데 크는 생명을 보면서 신기했다. 그리고 관악산에 갔다. 자발적으로 산에 가는 건 태어나서 두 번째만인가. 튼튼한 친구들과 가서 빠르게 올라갔고 내려올 때는 더 빨리 내려왔다. 산에 내려와서 거하게 한 상을 먹었는데. 빵집에 들리려다 너무 피곤해 밥을 먹고 집에 갔다. 올라갈 때부터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왜 그 친구를 기다려주지 못했을까 두고두고 생각났다. 그 일이 있고 시간이 한참 흘러서 언젠가 생토에서 따뜻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말을 했었고. 거기서 누군가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나는 그제서야 납득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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