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열정 한 조각 나누어 주세요

미피_ 2020. 10. 8. 16:03

느슨한글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 인생에 열정이 없다. 설레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모르겠고 답답한 것만 늘어간다. 트위터에서는 낙태죄 폐지에 대해 떠든다. 아무리 떠들어도 무슨 소용일까. 화내는데 힘을 쓰고 싶지 않아 겉으로만 훑는다. 내일이 설레는 일을 하고 싶다.

 

쉽게 말하지 못하는 걱정이라는 게 없다고 마음먹은 이후로. 그냥 현실적인 걱정을 한다.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앞으로의 경제적 능력이다. 현실적인 문제를 대면서 하지 못할 것에 이유를 댄다. 의욕이 넘쳤던 때를 돌이켜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해가지 않았다. 안 될 이유를 찾자면 수백수만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텐가? 지난날의 나는 에너지가 넘쳤었구나.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알게 되는 것들. 나는 지금 무언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편이구나. 불투명한 것을 마주하진 못하고 지금의 나는 땅이라도 파야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최근엔 트위터를 꽤 열심히 해봤다. 지나가는 생각들을 트위터로 뱉어버리면 사라질 기억들도 그 자리에 남게 된다. 무언갈 쓴다는거는 더 생각하게 해주고 생각들을 정리해준다. 대수롭지 않은 말들이었지만. 다 의미가 있는 말들이었다.

 

불안함이 성장의 동력이라면 나는 이대로 멈추고 싶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조급한 마음에 너무 빨리 포기해버렸나 싶은 것들이 떠오른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 어느새부턴가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설레는 게 없는 사람은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일까. 이대로 멈추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나에겐 늙을 때까지 살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있는데 적어도 50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아득하고 그마저 남은 열정들이 녹아내린다.

 

아직까지도 열정이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산다. 매일매일을 가득 채워 사는 태라와, 다음 취미를 찾아 떠나는 이만보를 보면서 부러워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휘몰아치는 일상이 다가오면 그 순간을 붙잡고 싶어서 나를 가라앉히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이렇게 돼먹은 사람인가 보다.

 

내 마음은 어쩌면 힐링의 시대에 최적화된 구조일지도. 요즘 내 마음은 너무나 브이로그의 시대다. 일상마저 가득 채워 송출해야 되는 사람들. 힐링의 시대에서는 순간의 여유가 힙함의 상징이었다. 그런 내 자아가 브이로그의 시대에서 살아가려니 따라가지 못해 지쳐 나가떨어졌다. 서로 다른 2명에게서나 아무것도 안 해 번아웃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지금 번아웃인가? 의심되기도 한다.

 

얼마 전 뒷자리에 있는 여자 과장님과 단둘이 점심을 먹었다.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화장 얘기가 나왔다. 나는 회사에 화장하고 가지 않는다고 했더니 눈이 똥그래지며 놀래 하던 게 기억난다. 나도 화장을 지웠을 때 내 모습이 낯설었는데 한참 지나면 또 그게 익숙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사래 치며 나이가 부럽다며 말하던 과장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난 아직 그 나이가 되어보지 못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 그 사람만의 무언가 있겠지만. 손사래 치던 그 모습이 어떻게 보면 내 모습 같다고 생각되니 더 이상 어떤 말을 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자기는 3개의 열정 구슬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중 한 개를 석사 때 사용했다는 친구가 있다. 내 열정 구슬은 분명 남아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도난당한 기분이다. 열정 없이 사는 삶도 재밌게 살고 싶다. 그러니 열정 구슬이 계속 나오는 주머니를 가질 수 없다면 내가 좋은 말만 듣고 살 수 있게해 주세요. 바닥나버린 열정이 바짝 말라버리지 않게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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