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2)

금눈쇠올빼미 2020. 8. 7. 23:51

느슨한글

 * 저의 개인적인 첫인상이라 실제랑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제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느꼈을 수 도 있는 부분이니 그냥 재미로만 봐주세요!


<미피>

 

미피는 거의 20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첫인상을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만났는데, 나는 반에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지만 미피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혼자 집을 가는데 미피랑 다른 친구가 앞에 가는 것이 보였다. 단순히 나와 집 방향이 같다는 걸 알고 친구가 되야겠다 생각했었다. 그 뒤로 어떻게 친하게 되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것을 보면 하교를 함께 할 친구 만들기에 성공했었나 보다. 미피는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키가 크고 조심성 있는 성격 같았는데 왠지 모르게 착해 보였다. 그래서 친해지기로 도전했던 것도 있다. 미피 옆에 같이 있던 친구는 하얗고 미피보다 키가 좀 작은 편에 통통 튀는 성격이었는데 그게 오묘한 케미를 만들었었다. 그 케미 속에서 미피는 상대적으로 대장 느낌을 풍겼어서 뭔가 친해지기 위해서는 미피의 허락을 받아야 될 것만 같았다. 친해져 보니 미피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뛰어노는 걸 좋아하고 노는데 죽이 잘 맞았었다.


미피는 어릴때부터 키가 큰 편이었는데 나도 그때는 큰 편이었다. 항상 키 순으로 줄을 서면 거의 맨 뒤에 서는 편이었으니까. 그러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그만 자라게 되었고 미피는 계속해서 커갔다. 엄마가 오랜만에 미피를 우연히 보고 집에 와서는 "미피 키 정말 많이 컸더라 너랑 이제 키 차이 많이 날 것 같네~"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배신자 미피.

<뿌셔뿌셔 불고기 맛>

 

뿌불의 첫인상은 정말 강열하다. 재수학원 내 뒷자리였던 뿌불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건 자습까지 다 마치고 집 가느라 분주한 교실에서였다. 이날은 긴 생머리의 뿌불이 똑 단발을 하고 온 날이었다. 개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모두가 자발적 아싸를 자처하며 개인플레이를 했었고, 나 역시 그런 이유에서 바로 뒤에 앉은 뿌불이 머리를 자른 걸 알았지만 아는 척을 안 했었다. 열심히 짐을 챙기고 있는데 다른 반 친구가 우리 교실로 들어왔다. 나는 문 앞 3번째 줄에 앉았었는데 내 옆을 지나 바로 뒤에 서는 것이 느껴졌었다. 그리고는 뿌불의 잘린 머리를 보고 놀라 했는데 나도 덩달아 놀랐다. 뿌불이 아주 우렁차게 쌍욕을 하며 머리가 망했다고 칭얼댔기 때문에. 오랜만에 찰진 욕을 들어서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았고, 땡글하게 눈을 뜬 뿌불이 보였다. 서로 멋쩍게 웃고는 헤어졌는데 그 뒤로 내적 친밀감이 급속도로 높아졌었다. 뿌불이 욕을 해서 놀란 이유는 또 있는데, 뿌불이 전혀 욕을 할 것처럼 안 생겨서 이다. 큰 눈에 댕댕이 느낌이 물씬 나는 친구라 귀여운 목소리가 나올 거라 속으로 기대했었나 보다. 편견이지만 아무튼 그랬었다. 


뭐, 대부분의 재수학원이 그렇듯 나중에는 위아더월드가 되어 다 친해졌다. 굳이 함께 떠들고 놀진 않아도 같이 고생하고 동거 동락한다는 게 친분을 쌓아줬다. 뿌불과는 지금까지도 몇 친구들과 함께 친하게 지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다 같이 만나면 쌍욕 모임이 되어서는 한 음절마다 욕을 넣는다.

<태라>

 

연희동의 노아로스팅에서 처음 만난 태라. 이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가지고 독서모임을 했었는데 태라가 아주 오래된 발행본을 들고 왔었다. 껄껄 웃으며 자신의 고서를 보여줬던 태라가 아직 눈에 훤하다. 태라는 정말 시원시원한 성격이었고 말도 되게 잘했었는데 나는 이때만 해도 독서모임에 온 지 얼마 안 된 터라 조금 낯을 가리고 있어 털털한 태라가 멋져 보였었다. 무엇보다 내가 여태 친해져 본 적이 없는 사람 유형이라 조금 신기했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다 순둥 한 편인데 태라처럼 쿨워터의 훤칠한 사람이 없었어서. 긴 생머리에 자유분방한 모습이 되게 새로웠다. 또 이때의 나는 퍼스널 컬러에 지대한 관심이 있던 인간이라 내가 절대 못 바르는 쿨 핑크 립스틱을 바른 태라의 입술을 많이 훔쳐봤었다(변태 아님). '퍼스널 컬러마저 태라의 성격 같군'이라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리고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이 태라가 독서모임 후 책을 카페에 쿨하게 버리고 갔다는 것. 수능 끝나고 다푼 문제집 버리는 것도 주저했던 나로서는 대박적이라고 생각했었다. 태라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독서모임에 대한 인상이 '사색하게 하는 곳' 이었는데 약간의 외향적 느낌이 추가되었다. 열정과다 인간 태라 덕에 독서모임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아서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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