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
2020. 8. 8. 23:58느슨한글
어린이날 즈음 <트롤:월드 투어>가 극장과 VOD로 동시 개봉했다. 트롤은 전설 속의 요정(혹은 괴물)으로 노래와 춤을 좋아한다. 트롤의 긴 머리를 만지면 행운이 따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트롤 이야기에 드림웍스가 다채로운 빛을 더해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시켰다. 월드 투어 편에선 레드벨벳이 K-POP GANG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소식에 케이팝 덕후로서 관심이 갔다.
친구를 꼬셔서 같이 보러갔고, 생각보다 재밌었지만 너무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었다. 지나친 유치함에 왓챠 3.0점을 줬다. (극장을 나오면서 친구에게는 “괜찮네! 너무 귀여웠어 진짜.”라고 말했다.) 캐릭터도 노래도 웃음이 나오고 즐거운데 스토리가 아쉬웠다. 프로모션 영상에서 등장한 레드벨벳 캐릭터의 대사 “케이팝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어.“에 홀려서 ‘이건 봐야 해!’싶었던 건데 정작 영화에서는 그 장면이 케이팝 갱의 전부였다. 우리나라 영화가 아니니 당연한 거지만 괜히 아쉬웠다. 더 원했다고요. 짐~살라 빔~ 짐짐 짐살라빔~짐짐~
기존 트롤 영화가 팝 장르만 다뤘다면 월드투어는 세계관을 확장한다. 클래식, 락, 컨트리, 디스코, 케이팝 ... ! 그만큼 다양한 장르가 영화를 가득 채운다. 실제로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다른 음악 취향을 갖고 있다. 엄마는 트로트를 흥얼거리고, 아빠는 응팔 감성, 어떤 친구는 인디음악을 좋아한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친구도 나와 취향이 갈린다. 나는 상큼하고 밝은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는 반면에 다른 친구는 섹시하고 성숙한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엔 이렇게 나와 다른 취향을 마주했을 때 놀라곤 했다. 같은 인간인데 나는 어째서 여기에 매력을 느끼고, 어떻게 다른 사람은 여기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 그러면서 내 취향을 보호할 근거들을 생각해왔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음악은 이러이러한 점이 좋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그 이유때문에 좋아한다기보다는 인정 욕구때문에 이유가 덧붙여지는 것 같다. 굳이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는데! 홍시니까 홍시맛 나는 것처럼 좋으니까 좋아하게 된 느낌. 물론 나자신의 취향을 고찰하는 게 즐겁긴 하다. 나를 파헤치고픈 욕구.. 어쨌든 내가 내 홍시를 좋아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홍시를 좋아하는 것에 과한 의문을 품거나 찌푸리지 않기로 했다. 뭐, 원래도 타인의 취향에 오지랖부리지 않는 편이지만..
아.. 아니다 오지랖 부린 사례가 최근에 있다. 내가 맛있어하는 공차 조합을 주변에 먹여보고 있다. 호불호가 갈린다. 슬프다.
다시 월드투어로 돌아가서, 영화를 보며 음악으로 대동단결하는 트롤들의 단순함, 순수함, 그리고 긍정에너지가 좋았다. 케이팝 장르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가 아닐까. 맨날 노래하고 춤추고 파티하고, 또 허그타임을 가진다. 너무 귀여워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트롤을 몇 번 올린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친구가 생일선물로 파피 인형을 보내왔다. 분홍머리 파피는 트롤 영화의 메인 캐릭터로 트롤들의 공주이자 여왕이다. 택배상자를 열고, 아 **! 라고 웃음섞인 욕을 내뱉었다. 2016년에 먼저 나온 트롤1은 보지 못했었는데 오늘 VOD를 구매해서 봤다. 어딘가 울컥하는 장면이 있어서 왓챠 4.0점을 줬다. 그렇다. 나는 겨울왕국2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월드투어가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트롤1은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 행복은 우리 안에 항상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겐 겉으로 내뱉지 않는 이유가 있다. 상대의 상황을 알지 못 하면서 무조건 행복하라고, 웃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정말 도움을 주고 싶다면 받는 사람 입장을 좀 더 살피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이 힘들어 보인다고 마냥 “야, 웃어! 날이 좋잖아!”라고 하진 말아야겠다. (평소의 난 좀 생각없이 이러는 편이다..)

트롤은 귀엽다. hug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