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르쯔는 혼란스럽다

hyertz 2022. 10. 31. 22:49

느슨한글

민수 - 민수는 혼란스럽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들 제대로 살아가는 걸까. 나만 빼고 다들 제대로된 어른처럼 사는 것 같아 무기력함이 몰려오는 때가 있다. 대충 인생의 4분의 1지점에서 방황하고 괴로워서 미쳐 죽겠는 상황. 그런 걸 quarterlife crisis라고 부른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정말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닌 걸까? 눈에 비치는 세상은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아무튼 이런 괴로움이 특정한 생애 주기를 살면서 당연하게 겪는 과업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몇 살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일을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안된 주제에 감히 그런 고민을 벌써부터 한다. 몇 주 전 애니연 수업에서 '오래 살고 싶은가? 몇 살까지 살고 싶은가?' 대충 이런 내용의 질문에 답변할 일이 있었는데, '딱히 장수하고 싶은 맘은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죽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 죽고 싶지 않다. 이 이야기를 왜 꺼냈냐면,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에게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최근 들어 자꾸 던지게 되기 때문이다. 매일 10시간 이상을 집 밖에서 보내는 직장인은 하루 14시간 정도를 자신의 의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데, 나는 적어도 8시간은 자야 개운한 가성비 최악의 몸뚱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고작 6시간 정도만 간신히 남을 뿐이다. 밥 먹고, 집과 몸을 깨끗히 하고, 일과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나면 남는 시간이 길지 않다. 그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책을 읽고, 언어 공부를 하고, 고양이를 예뻐하고, 미디어를 시청하고... 

그러면 역시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Quarterlife>의 독자 후기 중엔, "엄마 아빠는 전쟁도 겪어냈는데, 나는 왜 출근도 힘든거야!"라는 재미있는 한줄평이 있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엄마는 서른에 애 셋을 키우면서도 일을 다녔는데 나는 고작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것마저 죽을 것 같은 게 말이 되냐고! 세상이 미친 건지, 내가 미친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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