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글 썼나 자괴감 들어
2021. 7. 28. 21:33느슨한글
오늘도 쓸 게 없다.. 노트북 켜놓고 글감을 찾는다는 핑계로 스마트폰과 포털사이트만 뒤적거리다가 아무 영감도 받지 못하고 또 멀뚱 흰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글쓴이'가 되는 것의 어려움을 요즘 들어 더욱 크게 느끼곤 한다. 책을 읽다보면 경외감이 들 때가 있다. 가령 수전 손택이나 움베르토 에코같은 거장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내가 이 사람들과 같은 종의 인간이 맞나 싶다. 어쩐지 그들의 머릿속엔 백과사전 같은 것이 내장되어 있는 것만 같아서, 듣도보도 못한 고유명사와 각국의 역사들을 자신의 논리에 거침없이 집어넣어 뱉는다. 참나.. 나는 그들이 늘어놓은 말을 이해도 잘 못하는데. 놀랍고 부럽다. 나는 이딴 일기같은 글도 쓰기가 힘들어 징징거리고 있는데 그들은 세계에 길이 남을, 가슴에 울림과 교훈을 주는 글을 마구마구 써댄다. 글을 써버릇하면 늘긴 하는 건지. 뭐.. 매일 이딴 글만 써대는데 갑자기 내가 손택같은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게 말이 안 되긴 한다. 잘 쓴 글의 저자 이력을 살펴보며 매번 '그는 문학평론가니까, 교수니까 나의 이정도 덜떨어짐은 괜찮다'며 다독이는 것도 퍽 애잔한 일이다. 책을 쓴다는 건 대단하다. 하나의 논지를 2~300페이지 두께로 불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나는 졸업 논문 18페이지 쓰는 것도 벅차서 매일 울었다. 소설은 더 어렵다. 자전적이지 않은 소설을 쓴다는 게 가능할까? 언젠가 소설을 써 보려고 시도해본 적도 있었으나 내용이 몹시 구렸던 것은 물론, 어쩐지 완전히 내가 지워진 글은 절대로 쓸 수가 없어서 상상력의 한계를 통감했다. 망상에 젖어 사는 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주인공인 망상일 뿐 전혀 다른 이야기는 상상할 수가 없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이렇게도 어려운 일인데 매일 수 백권의 신간과 수 천개의 칼럼이 쏟아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세상에 잘 쓴 글은 너무 많고 나는 너무 못났고 초라하고 글을 잘 쓰고 싶다고 하면서도 이 짧은 글도 쓰기 귀찮은,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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