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매듭짓기 #01: 조금만 더 슬퍼할게요

hyertz 2020. 12. 2. 16:01

느슨한글

 

2020년 매듭짓기라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미피가 가져왔길래 냉큼 글토마토 주제로 삼자고 했던 나를 한 대 후려치며 글을 시작한다. 코로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유독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 느낌이다. 2021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매번 새삼스럽고 놀랍다. 아무튼 1월, 사진첩을 뒤져보니 뭔가 많이 남아 있기는 한데... 에피소드라고 이름 붙이니 이것 참 글감이 될만한 일이 없다. 나 왜 이렇게 밋밋하게 살아온 거지?

 

나름대로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역시 가장 강력하게 기억에 남는 1월의 에피소드를 꼽아보자면 역시 엑스원의 해체라고 할 수 있겠다. 작년 5월 나는 언제나처럼 프듀에 미쳐있었고, 원픽의 데뷔를 지켜보며 새로 정착할 아이돌이 생겼음에 기뻐했다. 그러나 순위발표식이 있던 바로 그날 새벽부터 제기된 투표 조작 의혹은 내 앞에 놓인 캄캄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던 것이다.. 한 달이라는 짧은 활동과 100일이 넘는 기다림 끝에 2020년 1월 6일, 엑스원은 공식적으로 해체 발표를 한다.

 

음.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실장과 점심을 먹는 날이었지만 어찌저찌 운좋게 빠져나와 과 선배와 무리지어 밥을 먹으러 갔다. 순대국과 머릿고기를 먹으며 몰래 낮술도 살짝 했다. 평화로웠다. 아마 오후 4시 반이었을 거다. 트위터에 줄줄이 뜬 해체 발표 기사를 확인 한 건..

 

12월 말에 이미 엑스원과 아이즈원의 활동 재개가 결정이 되었던 차였다. 12월 31일 나는 엑스원 팬클럽의 공식 키트 언박싱 영상도 열심히 만들어서 업로드하기까지 했다.

 

사실 발표를 확인하자마자 억장이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지고.. 뭐 그랬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며칠만에 번복한 입장에 좀 놀랐고, 다들 화를 내고 있기에 습관적으로 함께 화를 냈다. 기사를 확인한 순간부터 퇴근하고 집에 가는 순간까지, 그리고 집에 가서도 계속해서 욕을 했다. 아마 계속 욕만 퍼부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던 것 같다.

 

슬픔을 느낀 건 조작 논란으로 활동을 쉬는 동안 찍은 단체 사진들이 하나둘 공개되기 시작했을 때 부터다. 이제 이 아이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점점 슬퍼졌다. 비록 내 최애와 경쟁하던 아이들이지만 한명 한명 그래도 꽤 좋아했었는데. 그 날의 슬픔과 분노는 아직도 채 무뎌지지 않고 일상 곳곳에서 나를 찌른다.

 

눈과 귀를 막고 활동을 강행하라며 소리쳤던 나지만 조작이 왜 문제인지 알고 있고 이 그룹이 왜 해체를 해야만 했는지, 왜 어떤 그룹은 해체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 일각에서 유닛그룹을 만들어 활동하자며 했던 기부나 시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체는 결정되었고, 결국 그것이 맞는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아직도 간헐적으로 아쉬움과 씁쓸함과 미련을 느낀다. 이건 어쩔수가 없다. 가끔은 법칙이나 논리보다 내 감정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는 이 슬픔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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