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값

누아nua 2020. 10. 20. 23:49

느슨한글

 

어젯밤에는 사실 목숨값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다가 바디필로우에 누워 노곤 노곤 하는 새 잠이 들었다. 바디필로우를 산 뒤로 나는 잠에 들기 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졌는데, 하루에 네시간 정도를 간신히 잤던 나에게는 정말 너무 좋은 일이다. 내가 산 바디필로우는 U자형으로 그 위에 누워있으면 적당히 기분 좋은 눌림이 있다. 잘 때 옆에 누가 있어야 잠이 잘 오는 사람이나 압박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기분 좋은 눌림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다가도 벽과 매트리스 사이를 파고드는 사람이었는데, 그건 벽이 시원해서이기도 하지만 딱 들어맞는 게 좋아서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엎드려 자면 몸이 눌려 심장이 펌프질해서 잠이 잘 온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적어보니 근거 없는 말 같지만.

목숨값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건 오래되었다. 아마 트위터에서인가 마주친 글에서 사망한 노동자당 사측이 내야 하는 벌금은 450만 원이라는 글이 계속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 뒤로 나는 벌금 조로 자본이 낼 수 있는 사람당 목숨값은 450만 원 정도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한 사람을 먹이고 재우고 키우고 그 여타 모든 걸 다 하기 위해서 450만 원보다 훨씬 더 큰 돈이 들어가는 걸 생각하면 너무……. 너무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누군가를 키우기 위해 드는 돈과 저 벌금을 비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들이는 돈, 그리고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내려와서 남긴 족적 같은 거 그리고 그 삶에 지불하는 대가가 너무, 너무 싸다는 것에. 무슨 말을 붙여야 할까.

입안을 맴도는 말들은 너무 많은데 말로 뱉기 어려울 때는 떠도는 장면들을 묘사한다. 친구가 얘기해준 배달업계에 문제를 제기했던 잡지사의 글. 배달원의 처우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나는 그럴거면 조금 늦게 받아도 된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그러자 업체들은 앱에 조금 늦게 받아도 된다고 나타낼 수 있는 설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선의를 보인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가장 손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한 건데, 그런 사람들은 손해라고 볼 수 있는 늦은 배달에 대해서 별 불만 없이 받아들이겠지만 그런 선의에 기대서 문제를 덮고 지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에 신경 쓰는 누군가의 불편함을 대가로 대충 굴러가는 상황들이 너무나 많다.

죽기 직전에 너무 힘들다고 보냈던 택배기사의 카톡 메시지 같은 거나 아니면 고 김용균 노동자에 대해 말하면서 이런 업체와 어떻게 계속 계약할 수 있냐고 울부짖는 류의원의 모습들 같은 거나 그런 걸 보면 안 보기 전처럼 살 수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지.

 

그러니까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것들에 대해서 떠올린다. 그리고 마땅히 잊혀지는 것들에 대해서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느슨한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의금  (5) 2020.10.31
그냥 왠지  (4) 2020.10.24
2020/10/19  (5) 2020.10.19
Bir- Hakeim  (3) 2020.10.17
주변에 닮고 싶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  (4) 2020.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