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하고 텁텁한 날들

김니타 2020. 9. 22. 03:21

느슨한글


일기를 쓴 지 참 오래 됐다. 요즘 나는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눈을 감았다 뜨면 하루가 가있고 할 일들은 끊임 없이 밀려들어 온다. 이제 겨우 따라잡았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강의가 올라오고, 일찍 자서 실시간 강의 때 졸지 않으려고 해도 수업 중반부터는 너무 졸리다. 일어나서 체조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등 별 짓을 다해서 정말 깨있기만 한다. 그렇게 수업을 듣고 나면 너무 졸리니까 다시 잠을 자고, 늘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자게 된다. 시청 기한을 놓치고, 출석은 해놓고 출석 과제를 내는 걸 까먹어서 점수를 깎이고.


아주 커다란 우울을 겪었기 때문에 이 정도 우울은 우울도 아니라고 생각한걸까. 요즘 어떤지 말씀 드리다가 선생님께서 우울한 거 맞다고 하셨을 때는 그제서야, 아, 그렇구나 했다. 요즘의 나는 우울하구나. 예전에는 기쁜 감정을 가져도 항상 우울했기 때문에 그것이 기쁨이 맞는지 헷갈렸는데 이제는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나는 참 관성으로 사는 사람 같다. 여행을 할 때면 난 내가 평생 여행을 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면 내가 여행이라는 건 해본 적도 없는 사람같다. 뒤돌아서면 모든 걸 잊어버리게 되는 건 이제 건강해졌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기술인걸까?


나는 약간... ‘환기광’인데 지금 사는 집은 창이 작아서 환기가 잘 안 된다. 처음 집에 보러 왔을 때에는 저 정도 크기이면 적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창은 한 쪽으로만 열린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순간 잊어버리고 집을 계약하는 커다란 결정을 해버렸다.

살다보니 집에 해가 잘 들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집을 보러 왔던 그날 채광에 딱히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살아보니까 그렇더라. 들어오자마자 중개인이 불을 켰던 걸까? 너무 덥고 지친 나는 그런 것도 잘 체크하지 못하고,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다는 그런 나의 마음을 무시해버린 채로 계약을 진행했다. 이 불쾌함은 시간이 지나도 잘 옅어지지 않다가 요즘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계속 우울하게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이럴 때 호정의 말을 떠올린다. 어쩌겠어, 예뻐해줘야지. 

왜 나는 그렇게까지 괴로웠나 돌이켜보면 그 직감을 무시하지 않았더라면—하는,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고등학생 때에도 아는 문제를 틀리면 그게 그렇게 속상했다. 점수가 나빠도 모르던 걸 틀렸으면 금세 잊어버렸는데, 하나를 틀려도 실수를 해서 틀리면 그게 아주 많이 나를 괴롭혔다.


오늘 꿈의 배경은 독일이었던 것 같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한국 사람들과 기차를 탔고 그들 덕분에 맞게 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기차 안에서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꿈에서 화를 내면서도 화를 낸 걸 후회했다. 난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면서까지 화를 낸 적이 태어나서 거의 없는데, 꿈에서는 왜 갑자기 그렇게까지 했을까? 꿈에서 깬 뒤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다닐 때 꿈에서 학교가 가기 싫어서 땡땡이를 쳤고 땡땡이를 치면서 후회했다. 꿈에서 깬 뒤 앞으로도, 여태 해온 것처럼, 학교가 아무리 싫어도 학교를 착실히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꿈은 나의 욕망을 해소해주나 보다. 땡땡이를 치고 싶던 나는 현실에서는 하지 못했지만 꿈에서 그 상황을 체험함으로써 땡땡이에 대한 욕망이 사라졌으니. 어쩌면 나는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싶었던걸까? 누구에게? 왜? 나는 내 마음에 무얼 품고 살아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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