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로그가 만들어준 연緣
2020. 9. 19. 23:59느슨한글
브이로그는 브이로그를 부른다!?
지나가는 추억을 잊지 않으려고 브이로그를 찍기 시작했는데 이게 새로운 인연/추억도 만들어줬다.
모바일 앱으로도 그럴싸한 영상 편집이 가능해졌고 덕분에 2018년부터 브이로그를 만들며 놀았다.
그러던 중... 지인의 졸업전시회(이하 졸전)에 갈 기회가 생겼다. 이전에도 친구들의 졸전에 몇 번 갔었는데 항상 재밌었다. 몇 년 동안 발전한 자신을 하나의 작품, 한 칸짜리 부스 속에 담아 증명해내는 게 참 멋지다. 창의력도 팡팡 터져서 같이 뇌가 막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사진으로만 남겼던 좋은 영감들을 이번엔 영상에 담아보기로 했다.
이 졸전은 시각디자인 전시였고, 진짜 대박으로 개꿀잼이었다. 역대급.. 일단 지인이 작품 소개를 너무 재밌게 잘해줬고, 작품들도 유독 신기하고 독특했다. 영상 클립을 모아모아 편집해 유튜브에 올렸는데 또 생각보다 반응이 팡팡 터졌다! 이전 브이로그 영상들은 조회수가 100도 안됐는데 이 영상은 천 뷰를 넘기고 댓글도 많이 달렸다. 현재 1.8만뷰... 나는 비전공자여서 입시나 학과 관련한 댓글에 답하기 어려웠는데 영상 유입자가 많으니 전공자분들이 대신 나서서 답변해주셨다. 아. 역시 나한테만 재밌는 게 아니었구나. 6-6 흡족.
나역시 졸전을 보고 굉장한 호기심이 생겼다. (졸전이 정말 대단했어요..) 어차피 막학기라 학점도 남는데 시디과 강의 하나 정도 들어볼까? 싶어서 지인에게 비전공자가 들을만한 강의 추천을 부탁했다! 마지막 기회여서 그런지 막학기엔 용감해진다. 추천 받은 강의를 시간표와 맞춰보고 2개를 희망과목으로 담았다. a. 타이포그래피 강의 b. 디자인 기획 강의였다. a강의는 수강신청에 실패했지만 증원을 바라며 첫 수업에 갔다. 교수님은 본인 철학이 뚜렷하고 업계에서 꽤 유명한 분이었다. OT에서도 쉽지 않은 강의임이 느껴졌다. 매주 타이포 과제를 창작해 뽑아와야 했다. 어도비 인디자인 프로그램만을 사용해야하며 프린트도 무조건 일반 프린터가 아닌 레이저프린터를 사용해야했다. (학생들이 문의하니 시디과면 레이저프린터기 하나쯤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ㅋㅋㅋㅋ...). 들으면 굉장히 많이 얻어갈 강의였지만 나는 비전공자인데다가 비용도 많이 들거고.. 수업의 질을 위해 증원도 안 해주신다기에 포기했다. 조금 아쉽.
b강의는 강평이 오묘해서 불안했지만 어차피 A+ 받을 생각도 없었고,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 놓지 않았다. 강의 초반에는 널널하게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연습을 했다. 기억에 남는 과제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 내가 가장 자주 가는 공간에서 1시간 동안 머물면서 그 환경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공간으로 서점, 자주 가는 공간으로는 석촌호수를 골랐고 사진과 코멘트를 담아 프린트해갔다. 자유롭게 앉은 자리에서 같은 테이블끼리 각자의 사진과 공간을 설명했다. 쉬는 시간이 주어져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남자분이 복도에 있었다. 그분이 강의실 앞에서 말을 걸었다.
혹시 유튜브에 졸전 브이로그 올리시지 않았어요?
- 네? 맞아요. 아니 어떻게 아세요? (내 얼굴이 나오지 참)
영상 봤어요.
- 아 아 대박 어떻게 알아보셨지? 어머어ㅓ머ㅓ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캐호들갑 떨며 다시 강의실에 들어가 앉았다. 얘기를 해보니 이사람은 심지어 댓글까지 달았던 사람인 것! 누군가의 문의에 답한 전공자였다 ㄷㄷㄷ.. 본인의 졸업작품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유튜브을 봤다고 한다. 당시 사회와 단절된 은둔 생활 중이어서 나의 다른 브이로그들도 챙겨봤다고 했다. 내 영상을 매개로 간접적으로 바깥사람들을 만나 고마웠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이사람 완전 성덕이잔ㅎ아!!!!!!!! 근데 그러면서 구독은 안 했단다. 차가운 사람. 아무튼 굉장히 기억에 남는 일이다. 유튜브로 날 먼저 알게 된 사람을 현실에서 만나다니..
분명 계획서엔 팀플이 없는 b강의였는데 강의 중반부터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팀을 꾸려야했다. 비전공자에 아는 사람도 없는 나는 어디 들어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기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나둘 팀이 완성되고 있었고, 나는 남는 사람들이랑 팀이 되기 위해 뒤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아까 그 성덕이 “뿌불씨, 같이 하실래요?”라고 손을 내밀었다. 네!!! 네!!!!!! 네!!!!!!!!! 그렇게 팀이 되었다. 이렇게 만나게 된 우리 팀은 나를 포함해 총 6명. 우리는 약 3개월동안 수요일, 금요일마다 모여 회의를 했다. 팀원들이 나의 무능력을 많이 이해해주기도 했고 내가 하고싶어서 찾아간 강의라 그런지 왕복 2시간 통학에도 깔깔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래보니 친해졌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나의 브이로그에 들어와줬다. 브이로그가 낳은 또다른 브이로그. 🙃 졸전 브이로그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연결되지 않았을 팀이다. 그리고 A+까지 받았다. 절대평가이긴 했다.
이들은 브이로그 찍으려고 강의 듣는 거 아니냐고 음모론을 꺼냈지만 정말 맹세코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게 먼저고 영상은 나중이다. 영상을 위해 사람을 만나진 않는다..
TMI) 가장 먼저 팀명을 정해 발표해야 했을 때, 당시 mnet <퀸덤>에서의 여자 아이돌 댄스 유닛 명 식스퍼즐이 생각나서 식스퍼즐을 제안했다. 다들 퀸덤을 안 봐서 처음엔 느낌 좋다고 선정해주더니 유래(?)가 들키자 바로 팀명이 변경됐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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