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는 것

미피_ 2020. 8. 20. 13:29

느슨한글

아이스크림, 떡볶이, 수영, 시간이 여유로움, 혼자 생각해서 몰랐던 것 알아내기, 일찍 퇴근하기, 아침에 운동했을 때 드는 상쾌한 기분,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 쐬기, 어질러져 있는 것을 전부 정리했을 때, 차분히 독서하기, 가끔 혼자 카페 가기, 빙수, 불로소득, 고정수입, 개, 고양이, 동물들, 빡빡하지 않은 여행, 생토마토, 책 읽기, 혼자 영화관 가기, 엄마가 해준 먹을 거, 친구들, 큰 키, 귀고리 하기, 혼자 집에 있는 시간, 낮에 집 가기, 늦은 저녁 드라이브, 조성진, 김연아, 유재석, 상큼하고 신맛, 클래식, 피아노, 엄마, 친구들, 이노이노, 그림 그리기, 사람 분석하기, 미술, 심리학, 친구 집 놀러 가기, 해 떠있을 때 누워있기...



좋아하는 것끼리 비교해볼 때가 있다. 이상형 월드컵처럼. 아이스크림vs떡볶이. 좋아한다는건 상대적인 개념일 수 있다. 나는 짜장면을 좋아한다고 쉽게 말하진 않는데, 짬뽕vs짜장이면 당연히 짜장이다. 중국음식은 땡길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다. 기름진 맛이 지겨운 날이 있다. 그래도 꼭 고르자면 대체로 짜장을 고른다. 그래서 누가 좋아하는게 뭐냐고 물었을때 짜장면이라고 말하진 않지만 짜장면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누굴까라고 생각하면 비교적 쉽게 떠오른다. 그런데, 애매모호한 사람. 이 사람을 내가 좋아하나?라고 생각하면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애매모호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왜 그 사람을 쉽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할까. 너무 별로인 사람이라서? 같이했던 추억이 없어서? 그냥 왠지 모르게 별로일 것 같은 촉이 발동해서?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내 곁에 없을까 봐 두렵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좋아한다고 쉽게 말하진 않지만 막상 그 사람이 내 곁에 없는 걸 상상해보면 두렵다. 너무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어서 좋아함의 역치가 높아진 걸까.



가벼운 책을 읽고 싶을 때 아무튼 시리즈 책들을 읽는다. 아무튼 책에는 덕후라고 불릴만한 작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낱낱이 설명해준다. 아무튼 시리즈의 작가들은 정말 멋있다. 나는 보통 무언갈 좋아하면 별생각 없이 좋아하는 편인데 작가들은 내가 어떤 점에서 그것에 사로잡히는지 설명해줄 줄 안다. 한 가지를 진심으로 좋아해서 쉽게 들어볼 수 없는 에피소드도 많이 있다. 또 좋아하는 그것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도 변화한다. 무엇보다 책을 집필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정말 좋아하는 것만으로 있었던 많은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으면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특별한 거구나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아무튼 책에서도 작가가 이걸 왜 좋아하는지의 근본적인 설명은 정말 평범하다. 편안해져서, 행복해져서, 건강해져서, 기쁘게 해 줘서. 사람이 좋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대상을 좋아한다고 부르는 걸까. 그런데 좋아하는 대상과 있었던 이야기를 보면, 대체로 좋아한다의 한 가지 감정만 느끼지 않는다. '아무튼 양말'의 구달 작가는 고급 양말을 반려견이 물어서 구멍 낼까 봐 두려워한다. '아무튼 피트니스'에서 활동가인 작가는 트레이너에게 PT를 받으면서 그의 노동환경을 염려한다. '아무튼 스릴러' 이다혜 기자는 스릴러 장르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회범죄들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것으로 인해서 두려움, 불안함, 걱정이 따라오기도 한다. 좋아한다는 건 우리가 항상 그것에 좋은 감정만 느낀다는게 아닌가 보다. 길든 짧든 그 순간에 좋은 감정이 들면 우리는 그걸 좋아한다고 부른다.



나는 연봉이 천만원 만 올랐으면, 그냥 10억만 생겼으면~ 하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편이다. 그러다가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 돈을 좋아하게 됐지? 생각한다. 그러다가 돈이 정말 많으면 나는 뭘 할까?로 귀결된다. (돈이 정말 많은 삶을 상상한 내용은 지난번 느슨한 글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를 생각하고 나면 돈이 정말 많아 모든걸 선택할 수 있을 때 하게 되는게 정말 좋아하는건가? 라고 질문한다. 정말로, 진짜로, 진심, ㄹㅇ이라는 단어를 매일같이 쓴다. 좋아하는 것과 정말 좋아하는 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마도 정말 좋아하는 건 다른 걸 포기해서라도 얻고 싶은 감정일까. 혹시 좋아함의 단계는 시간의 지속성보다 그 순간의 강도에 따라 정해지는 건 아닐까.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 건 수영장까지 가서 탈의하고 씻고 수영복 말리고 다시 집까지 돌아오는 어쩌면 귀찮은 그 과정을 기꺼이 할 수 있을 만큼 수영하는 그 순간의 좋음 강도가 더 강한 건 아닐까. 그래서 진심으로 좋아하면 미쳐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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