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시간 59분의 사랑

hyertz 2020. 8. 19. 16:29

느슨한글


오늘도 누리가 깨워주는 아침이다. 알람도 없이 여섯시에 뜬 눈이 상쾌하진 않다. 오히려 조금 고약하다. 최누리씨가 화장실을 다녀오자마자 이불 위에 똥꼬를 문대는 식으로 나를 강제 기상시키던 게 벌써 몇 주 전이다. 요 근래 좀 잠잠한가 싶더니, 오늘은 발에 똥을 묻히고 올라와 쿵쿵 발도장을 찍어 댄다. 어마어마하게 냄새나는 발도장을.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일부러 이 시간에 똥을 싸서 깨우는 건 아니겠지? 최누리는 멍청한 표정과는 다르게 꽤 영리해서, 내가 일어나는 시간을 기억했다가 매일 같은 시간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깨워주곤 했다. 요즘엔 그 목소리에 익숙해져 좀 안 일어났더니 설마.. 이런 식의 새로운 방법을 체득해낸 건 아니겠지. 갑자기 몹시 불안한 마음이 든다.

 

아침 여섯시 반부터 세탁기를 돌리고, 거실 바닥의 똥 발자국을 닦으면서 양육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이 불효아기는 똥 묻은 발을 씻겨주고 있는 내가 싫다고 버둥대다가 기어코 내 잠옷에도 똥칠을, 그리고 팔뚝엔 얕은 발톱자국을 낸다. 순간 미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는 사실에 금세 미안해진다. 돌이켜보면 고양이를 기르겠다고 너무 쉽게 마음먹었던 것 같다. 내 일상에 하나의 생명을 더한다는 게 이렇게 무거운 일인 줄 미처 몰랐다. 성묘가 될때까지 키워놓으면 얘가 직장을 구해 돈벌어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생이 다할 때까지 평생의 의식주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니까 길게는 20년 동안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기를 키우는 셈인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앞으로 함께할 이 동물의 일생에 행복만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해야할 일, 시간을 쏟고 싶은 다른 일이 많아서, 나랑 노는 것 외엔 즐거울 일이 없는 누리에게 언제나 부채감을 느낀다. 내가 뭔가에 집중하는 동안 멍하니 웅크려 있거나 잠을 자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말못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누리를 키우기 시작한 그 때부터 나는 평생 이 아이에게 미안해야 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지고 가야할 마음의 빚이 있고, 그래서 누리를 미워할 수가 없다. 찰나의 얄미운 마음마저 미안하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내가 타인을(..생명체를)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종종 놀라곤 한다. 주는 것 없이 존재만으로 이토록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있었던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감정을 누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느껴본 적 없는 것 같다. 내 일상 거의 모든 시간, 그러니까 하루 23시간 59분 그리고 58초 정도의 시간에 나는 아무 이유없이 누리를 사랑한다. 마치 내가 이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하루걸러 하루 내 이불에 오줌을 갈기거나, 마시라고 떠 놓은 물을 다 엎어 거실바닥을 한강으로 만들어 놓아도. 점프도 못하면서 싱크대에 올라가려다 접시를 다 깨먹고, 옷방에 몰래 들어가 검은 옷가지 위에 털을 범벅으로 뿌려놓아도. 그렇게 가끔 얄미움이란 감정이 내 사랑을 이겨 바깥으로 비집고 나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24시간에 조금 못미치는 사랑을 하고 있다.




어제 아침 사건이 발생한 직후 쓴 글에 조금 살을 붙여봤습니다. 유독 정돈이 안 되는 글이지만 더 길게 붙잡고 쓰기엔 대신 후딱 올려버릴만한 다른 글감이 없어서... 다음주에는 좀더 공들인 글을 올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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