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역시

미피_ 2020. 8. 13. 23:31

느슨한글

여성 이슈는 볼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오늘은 기안84가 네이버에서 연재하는 웹툰 복학왕이 논란이 되었다. 오늘도 여성 혐오 논란에 숨이 턱턱 막혔다. 주기적으로 쏟아지는 논란과 비난을 보며 흔들림 없이 굳건한 기안84가 남성으로 가질 수 있는 권력에 박탈감을 느낀다. 이번 논란도 그저 어리숙한 남성이 눈치 없이 벌인 해프닝 정도가 되어 지나간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건 그의 그럴수 있음을 받아주는 집단들이다. 반복되는 여성혐오 논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응없이 계약을 이어가는 네이버 웹툰, MBC 나혼자산다 제작진들, 그를 지지하는 충성댓글부대... 사회는 아직 여성혐오를 숨쉬듯 하고 있다. 자꾸만 반복되는 혐오에도 나는 왜 줄지 않는 타격감을 느낀다. 가끔은 화나는 것도 지겨워서 논란을 찾아볼 힘이 들지도 않는다.

 

여전한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와 비교하면 나아지긴 한걸까. 1940년 여성은 정신대에 끌려갈까 두려워 누군지도 모르고 결혼을 해야했다. 1970년 여성은 가부장제 아래서 남성의 말에 순종적이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2010년 여성은 여전히 밤늦게 혼자 돌아다닐때면 성폭력 당할까봐 불안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지금 2020년은 과거에 비해 무엇이 나아진것일까. 희망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현실이다.

 

가끔은 세상이 천천히 변하고 있는거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뒤돌아 보면 여성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하는 최저점이 변하긴 변한다. 그래도 이젠 여성이 투표를 할 수 있고, 사유재산과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여성이 차별받고 있다고 소리칠 수 있다. 어떨 땐 시대가 변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여성혐오 문제에 관심을 갖는 남성이 존재한다고 믿을때. 페미니즘을 알아가는 남성들이 조금이나마 있다. 매우 천천히 오랜 시간 공론화와 투쟁으로 얻어낸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려 정말로 나아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100년 전, 50년 전, 10년 전 여성과 무엇이 달라진걸까? 그 시대의 생활양식에 맞게 여성혐오의 방식이 변한것이지 여성의 인권 자체가 향상되었다고 바라볼 수 있을까? 여성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안전지대가 확장되었는가? 여성으로 태어나 최소한의 사람다울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되고 있는가? 과거와 비교해서 나아졌다는건 더이상 위로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살아 생전에 그 때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여성들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날을 희망하며 여성 혐오와 싸울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정부에서, 나름 수평적 문화를 가졌다는 IT 기업에서,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방송,언론사가 여성들에게 믿음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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